Breathless

하나의 scene은 한편의 詩다.
매혹적인 도입과 심상이 있고, 사건과 인물의 선택 그리고 변화가 있으며, 여운을 남기는 마무리가 있다.
그런 황홀한 씬이 없는 영화는 꽝이다. (이건 그림 예쁘다, 대사가 감칠맛 난다, 스팩타클하다, 조낸 우낀다.. 등등과 비스무리하지만, 실은 전혀 다르다)

어떤 secene(혹 sequence)이 전체와 너무 동떨어져 있어도 곤란하지만, story를 위해 기능적으로 복무하기만 하는 씬은 매력 없다. 정말로 꽂히는 (내가 꽂히고, 관객에게 꽂을 수 있는) 씬이야 말로 쾌락 그 자체다.

꽂히는 scene 하나를 쓰고 나면, 정말 날아갈 것만 같다.
아직 글일 뿐이지만, 이걸 어떻게 찍을지 궁리하며 즐거워 한다. 그 순간 나는 이미 촬영장으로, 편집실과 믹싱실로, 그리고 극장으로 '존트'해버린다. 이건 마치 범죄를 저지르는 것, 일탈과 비슷하다. 눈이 희번득거리고, 오금이 저려 오면서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바깥으로 나가 담배라도 물어야 조금 차분해진다.

시간이 지나, 형편없는 장면임을 깨닫고 찢어발기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러너스 하이'와 같은 몰입이 없다면 이 짓거리는 할 게 못된다. 흔히 대박난다, 돈이 된다 같은 건(확률도 엄청 낮지만) 부차적인 것이다. (실은 아무것도 아니다) 오로지 만드는 것 그 자체가 재미다. 술이나 섹스, '클린 히트' 보다도 더 죽여 주니까 계속 하는 것이다.


한동안 시나리오의 '시'자 까지 밖에 못썼다. scenario를 쓰랬더니, '詩나리오'만 쓰고 앉아 있었다.
큰 그림을 충분히 그리지 않은 채, 성급하게 scene을 쓰는 맛만 즐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내것도 아닌것, 회사의 것, 시장의 그것(이라고 짐작되는 것)에 적당히 맞추려 했던 것이다. (접접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임에도 만만하게 생각하고 까불락거렸다). 무엇보다도 내 안에서 충분히 끓어 오르지 않은 걸 덥썩 물었던 것이 최악이었다.

근 몇 년 동안 거대한 삽질을 계속해왔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내가 헛발질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깨닫는다는 말은 사실 너무 거창하다. 그동안 일기에 수없이 써댄 이야기였다. 다만 녀석의 울음소리를 듣고나서야 둔탁한 무엇이 나를 갈기고 갔다. 맨땅에 떨어진 느낌이 왔다. 하루에도 꼭 두번은 얼굴이 시뻘개질때까지 우는 녀석 덕분에 조금 무거워 진 것이다.


얼마전부터 서서히 불타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내곁을 지나가던 아내가 내게서 살기가 나오는 것 같다 했다.
이제야 겨우 (아주 조금) 쓸만한 연장이 되어가는 듯하다. 이 끓어 오르는 무엇을 잘 다스려야겠다.





by ssy | 2009/04/03 04:13 | 단상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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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chinadoll at 2009/04/03 12:24
그치. 플롯만 보면 씬이 싱거워지고 그렇다고 씬에 너무 공들이면 詩나리오가 되는.
건 그렇고 며칠 전 그 알 수 없는 분노로 불타오르던 눈빛이 강국이나 N군 때문이 아니었군.
잘된 일일세 그려. 록키3편이 생각난다는.
Commented by ssy at 2009/04/03 17:51
아마.. 미키는 죽고, 아폴로가 트레이너가 되는 게 3편이지.
Commented at 2009/04/06 11:3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sy at 2009/04/08 18:43
초사이어인으로 폭발하는 것보다, 그 폭발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겠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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