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일지 (잡담)

...

나는 나를 모른다. 해서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무섭다.
그게 내 깜냥을 알라는 말에 그치는 게 아니잖는가. 그렇게 순진한 질문이라면, '알어. 알어. 알겠어 (이제 제발 닥쳐줄래)'라고 대꾸해 버리겠지만, 질문은 거기까지가 아니다.

능력의 문제라면, 내 깜냥과 값어치를 대충은 안다. 내가 현재 감당할 수 있는 프로젝트의 크기도 알고 있고, 시장의 상황도 느끼고 있다. 다만 연출이란게 일종의 개인 사업자이고, 나 자신을 어느 정도 상품화 시킬 필요가 있기에, [격한 자신감]을 내비쳐야 할 때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항시 조심스럽고, 어떠한 부분에서도 잘 모를 수 있고, 내가 틀렸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이야기를 꺼낸다.


몇 해전, 단편 작업 때에도, 배우들에게 굉장히 긴 장광설을 늘어 놓으며 설득하고, 아직 찍히지도 않은 무엇을 보여주기 위해 애를 썼다. 실은 내가 생각한게 틀렸을 수도 있고, 옳지 않을 수도 있고, 개소리에 불과할 지도 모를 그런 이야기를 정색을 하고, (생떼를 쓰며) 이야기했다. 결국 전체 톤을 잡는 것은 오직 나의 몫이기 때문에, 어떤 것은 누르고, 어떤 때에는 욕도 하고, 심지어 누군가의 멱살도 잡고, 그랬다.

평소의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상상하기도 힘든 쌍욕과 분노와 아드레날린을 쏟아붓고 나면, 내가 뭣때문에 (확신하지도 않으면서) 그지랄을 떨었지?라며 자신에게 되묻곤 했다. 물론 굉장히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현장의 권력관계 때문에) 그런 적도 있다. 옳지는 않지만, 의도적으로 터프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마치 팀 동료가 '빈볼'을 맞으면 승패를 떠나 '보복'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게 패악질이건 '유사살인'이건 해야될 때가 있다. 투수가 가장 제구하기 힘든 공이 빈볼이라고 한다. 얼핏 심플해 보이는 그 행위 조차도, 같은 바닥의 사람이기에, 또 친구이기에 맨정신으로 하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군대에서는 늘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주 빨리 신탁에 맡겼달까? 그랬다) 나약한 우리는 자신이 참말쟁이인지, 거짓말쟁이인지 인지하기만해도 다행이다.

그리고..

'내게' 중요한 사안이 아니면, 그렇게 열내지도 않는다. 마음을 쓰면 마음을 쓰는 만큼 피로해지기 때문이다. 요 얼마간 신작 준비로 바쁜 나는 (게다가 아이를 키우면서 부터는 더더욱) 정말로 욕망에, 현실에 솔직한 것들에만 반응하기로 했다. 애초에 말 많은 떡밥이라면 물지 않았지만 말이다. (거기엔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도 한 몫 했으리라. 작품 외에 다른 것으로 '존재증명'을 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렇다. 실은 장난 아닌 '가오이스트'다)

최근에 가장 물고 싶은 떡밥은 '조승수'와 '울산 재보궐', '후보 단일화', '진보신당의 미래'지만 그런 글은 내 전공도 아니고, 그걸 내가 문다고 뭐가 달라지지도 않을 뿐더러, 술자리에서 번쩍인 '직관'을 넘어서는 글을 쓰기 힘들단 걸 알기 때문이다.


결국 늘 자신을 객관화 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예술가라면) 어떠한 칭찬도 큰 영광이 아니고, 개처럼 비판 받는다고 좆나리 치욕스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것 때문에 다음 작품을 못한다면 아주 힘들어지겠지만, 시장과 상황과 능력(그리고 욕망)을 아는 게 더 중요하겠지. 다만 상당히 까였다면, 괜시리 덥썩 문건 아닌지 반성해 봐야 하고, gg칠 필요는 없지만, 잠깐이라도 자숙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단 얘기다. 맷집이 능력의 전부이면 좀 피곤하잖나?

나는 그냥 그렇다. (앞으로도 그러려고 작정했지만) 내 작품과 seed와 강국에게 에너지를 쏟고 싶다. (강국이에 대한) 애착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조금더 심플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그점에서 시드니 루멧의 [영화 만들기]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영화 제대로 해 봐야겠다.


추신 1.
어제 간만에 야구 4경기를 모두 챙겨 보았다. (일부는 하이라이트였다)
대충 어떤 팀들이 탁월한지, 어떤 선수들이 요즘 상한가인지 보았다.
삼빠인 나로서는 빨아주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확실한 한계가 보였다. (깔끔하게 이겼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주목했던 히어로즈가 대패했지만, 되려 시원하게 진 감이 있다. 시즌 초라서 확신은 못하겠지만, 뭔가 달라졌다. 다만 타격의 불이 꺼졌을 때 김시진 감독이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 한화는 대승이었지만 불안불안하다. 류현진에, 타선도 터졌기에 낙승했지만 초반 대진운이 너무 않좋다. (상대 팀이 죄다 작년 4강 팀이다). 엘지는 만화같은 역전승을 일궈냈다. 나는 마지막 30분 동안 계속 엘지만 응원했다. (역시 소년만화 매니아다) 두빠들에겐 미안하지만, 엘지는 작년의 그 팀이 아니다. 할 만큼 하고 있다. 롯데는 정신 좀 차려야 겠고(지난주 엘지에게 당한 패배가 너무 아프다), 스크는 할말 없다(여전히 강하다). 기아? 다행이 내일은 윤석민이다(삼빠로서는 괴롭다. 겨우 분위기 반전시켰더니 '끝왕'이 나와버린다) 


추신 2.
최근에, 이런 저런 것들 때문에 피곤하여서 쓴 글이다. 그냥 좀 아쉬워서 그런다.
유난히 피로하다. 육아도, 신작도 그렇다. 윤리보다 욕망이 우선할 때가 있다. 내가 지금 그렇다.
실은 작품이 제일 우선한다. (아내와 강국이에게 엄청 미안하다. 나는 꽤나 차가운 인간이었다)

'새끼야, 말은 이렇게 하고, 야구나 챙겨보니?'라면 할 말 없지만,
야구보며 보낸 서너 시간이 '존포드 영화'(그리고 오즈의 영화)보다 더 위로가 되었다.


추신 3.
"군대를 갔는데, 이런 내가 사회주의잔데 삽질을 못하는 거야" 그때 되게 충격먹었다..
그렇다. 정말 찡했다. 그 구절에서, 잠깐 책장을 덮고 눈물을 삼켰다.
역시나 고백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니 대충 끝나는 고백은 값어치가 없다.
이런 뼈아픈 고백이야말로 진정 나를 흔든다.
자신을 뒤흔들지 못하는 무엇은 가치없다고 얘기한 친구야말로 옳았다.
미안하다. 내가 좀 부족했다.



...

by ssy | 2009/04/11 04:58 | 단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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